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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 Journal

북한의 아우슈비츠 Auschwitz in North Korea (translation)

by Rob Eshman

January 22, 2014 | 10:55 am

From left: Children at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during World War II and children photographed in an orphanage in North Korea during the 1997 famine.

From left: Children at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during World War II and children photographed in an orphanage in North Korea during the 1997 famine.

왼쪽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아이들과 북한 내1997년 기근 당시 고아원에서 사진 찍힌 아이들  

제라드 시첼의 이번 표지기사는 우리의 28년 역사에서 유대인 저널이 발행한 가장 중요한 편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대학살, 이스라엘, 또는 현대 유대인의 삶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끊임없는 북한의 사악한 강제수용소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가 계속해서 그들을 무시하는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왜 이것이 유대인 신문의 표지에 나와야 할까요?

1월 27일, 우리는 1945년의 그날, 소비에트 군대가 폴란드 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들어가 7,000명의 남아있는 포로들을 풀어준 날을 국제 대학살 추도일로 채택합니다. 그 구조는 너무 늦게 왔습니다. 1940년과 1945년 사이에 대략 130만의 유대인 남자, 여자와 아이들은 아우슈비츠와 주변의 수용소로 추방되었습니다. 110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교훈은 단지 유대인의 교훈이 아닙니다: 유대인 역사는 단지 유대인의 역사가 아닙니다. 아우슈비츠는 인간의 상상할 수 없는 악의 역량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 알지 않는 것에 대한 선택, 또는 아는 것에 대한 선택의 결과를 계속해서 가르칩니다 — 연합군의 지도자가 그랬듯이, 폴란드의 이웃들이 그랬듯이, 많은 유대인계 미국인들이 그랬듯이 —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두 번 다시는 안되”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우리만을 위해 의미한다면, 힐렐에게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오늘날 수천 수만의, 몇몇의 추정에 의해, 200,000명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북한의 포로 수용소에서 살고 죽습니다. 몇몇은 태어나서부터 살고 죽습니다. 그들은 고문, 강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이 북한 정권이 그들의 국민들에게 하는 것이 나치 정권이 유대인에게 했던 것의 비교의 연장선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다른 수용소에서, 한 사람은 언쟁을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감금이 아니라 전멸이었다고. 그러나, 공포를 언급한 우리 리포터의 증인으로서, 북한 정권이 완전히 궁극적으로 그들의 포로들을 전멸한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믿을만한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단지 그들이 유대인이었다는 이유로 지목 당했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포로들은 그들의 억류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 그들은 모두 북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학살에 앞서, 유대인들은 또한 그들 스스로를 독일인 또는 폴란드인 또는 헝가리인으로 여겼습니다. “대학살”의 정의는 대규모의 말살 또는 학살 입니다. “유대인”을 “반체제” 또는 “달갑지 않은”의 꼬리표로 교체해봅시다 — 더 나아 보입니까?

 “수용소는 거대한 억압 네트워크 심장의 섬뜩하고 강력한 도구 입니다.”라고 국제 사면 위원회의 북한 연구원, 라히브 나라얀이 PBS 시리즈 “최전방”에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혐의 없이 보내집니다, 재판은 커녕, 그들의 많은 이가 단지 총애를 잃은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환경은 엄청나게 지독합니다. 고문이 만연합니다; 여성들이 강간당한다는 보고들이 있고, 우리는 공개 처형이 만연한 장소라는 것을 압니다. 많은 포로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영양실조와 과로로 죽습니다.

그럼, 확실히 합시다: “두 번 다시는 안되!”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1945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또는 적어도 증거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마존에서 무언가를 사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또는 당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대신 다음에는 구글의 “북한 포로 수용소의 위성 사진들”을 보세요. 컴퓨터로 누구나 실제 수용소를 구글어스로 지금 이 순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압니다. 가장 예견 가능한 것은 내가 이것에 관해 무엇을 할 수 있나?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을 받아들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반응입니다

익숙한 소리같습니까? 60년 전,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고통받고 죽었던 것처럼, 문명화된 세계는 묻습니다, 무엇이 행해질 수 있었을까? 히틀러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미치광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 없이, 김정은은 화난 미치광이고, 북한은 핵 무기와 한반도를 불바다로 뒤바꿀 수 있는 충분한 재래식 무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 다신 안되!”는 별표가 붙여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두 번 다신 안되!”가 아닙니다 — 유대인이 아닌 한. 또는, “두 번 다신 안되!” — 가해자가 정말 무시무시한 때를 제외하고.

이 북한의 공포에 초점을 맞춰 포로들을 돕고 그들의 역경에 관심을 끌고, 그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속도를 가하기 위해 국제적인 움직임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움직임을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길 수 있는 지렛대 또한 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 정권의 유일하고 가장 큰 지지자 입니다. 외교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80퍼센트의 북한 소비자를 위한 제품과 45퍼센트의 음식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새로운” 중국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엄청 흔한 것이란 것을 알지만, 중국의 지도자들과 경영인들은 그들 나라가 김정은을 위해 계속되는 지원에 대한 우리의 격분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 하지만 문명화된 세계는 심지어 시도조차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심리학자이자 대학살 생존자인 Viktor Frankl은 인류에는 오직 두 가지 인종만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제대로 된 그리고 제대로 되지 않은. 당신이 어느 쪽인지 아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 당신이 희생자 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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